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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부모모임

인터뷰

[심층인터뷰] 게이 아들을 둔 부모님 - 산지기, 꾀꼬리


산지기님과 꾀꼬리님은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모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산지기님은 성소수자 인권단체에‘모리팬’이라는 닉네임으로 후원도 하고, 부모모임의 운영에도 참여하고 계시지만 처음부터 게이인 아들과의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다고 해요. 지금 돌아보면 처음 알게 됐을 때 좀 더 다르게 대화를 했더라면 서로 상처를 덜 주고받지 않았을까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얼마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산지기님과 꾀꼬리님은 손자의 과격한(?) 모습을 보며 유독 온순했던 모리의 어린 시절을 새삼 떠올리고 계시다고.

 

인터뷰 한 사람 / 모리

인터뷰 한 날짜 / 201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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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내 개똥 철학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데 남의 말이 제대로 들리기 시작하더라고. 그 다음부터 사회생활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되고. 그 전까지 나는 그렇게 안 살았거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아.”

 

 

“알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만났으면 어머니로서 반성할 건 반성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내가 못해줬던 것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냥 잘 안아줬을 거야. 얼마나 말 못하고 힘들었을지 생각하면서 안아줬을 거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때는 내 성질대로 그냥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내 입장, 내가 너무 힘든 거 그거 때문에... 그 충격 때문에 너한테 상처 준 것 때문에 지나고 나서 나도 힘들었다. 아이고 또 울면 안 되는데.”

 

 

1. 커밍아웃 이전

 

모리 / 자녀가 성소수자인 걸 알기 전에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산지기 / 일단 관심이 없었고, 저 친구들이 저렇게까지 하는 데는 나름은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긴 하면서도, 생각이나 의식이 잘못되어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 그때만 해도 타고난다는 생각보다는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쪽에 더 많은 믿음을 갖고 있었지.

 

꾀꼬리 / 고등학교 때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더스틴 호프만이 나오는 최초의 영화였지 싶은데, 거기에 동성애자가 나왔어. 그 사람은 탈출은 못하고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성소수자에 대해서 본거지. 그 사람이 자기는 탈출을 하지 않겠다, 가봤자 어디나 똑같다면서.

 

산지기 / 나는 그 영화를 봐도 게이가 나오는 줄 몰랐네. 안경 낀 걔 말이야?

 

꾀꼬리 / 응. 거기서 아주 똑똑한데 탈출을 못한다고, 해봤자 어디나 똑같다면서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데, 처음으로 그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약자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지.

 

모리 / 그게 몇 년도에 본 영화예요?

 

꾀꼬리 / 내 나이 열일곱? 그때 즈음 본 것 같아

 

산지기 / 그게 73년, 74년 그 즈음일 거야.

 

모리 / 홍석천이나 하리수가 나왔을 땐 어떠셨어요?

 

꾀꼬리 / 아버지는 맨날 고함을 질렀지만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인간은 여러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으니까 자기가 선택한 삶이라고 생각했지.

 

모리 /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당시에 어떠셨어요?

 

꾀꼬리 / 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채널 돌리라고 해도 난 계속 봤지.

 

산지기 /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 없었다. 기자회견 하면서 홍석천이 울 때는 ‘저 새끼 웃기는 새끼네’ 생각했지.

 

꾀꼬리 / 힘들었겠다고 생각했지.

 

산지기 / 이쪽 세계에 대해서 인정을 안 했기 때문에 울든 말든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고, 그냥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모리 / 두 분이 학교 다닐 때도 학교에 성소수자가 분명 있었을 텐데.

 

꾀꼬리 / 학교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시절만 해도 가둔 사회나 마찬가지였지 때문에 눈에 띄게 그렇게 안 했다.

 

산지기 / 우리 성장기에는 언론도 통제되는 사회였고, 위정자가 이 방향으로 가자고 하면 무조건 가야 하는, 북한이랑 별 차이가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는 이 세상에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꾀꼬리 / (산지기에게) 당신 좀 이상하다. 나는 목욕탕에 가면, 부산에 처음 내려와서 중학교 때 여자 목욕탕에 가니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목소리가 남성적이고 남자처럼 옷을 입고 여자랑 둘이서 목욕탕에 왔는데, 나는 여중생이었는데 ‘조금 이상하다’, 목소리가 걸걸하면서. 아, 그때가 고등학교 때인가 봐. 고1 때 영화를 먼저 보고, 목욕탕에서 그 사람들을 봤지. 남성만 그런 게 아니라 여성도 저런 사람이 있구나. 둘이가 같이 있더라고. 나이 든 아줌마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고 이러더라고. 그래도 태연하게 둘이서 목욕 잘 하고 나도 그냥 그런갑다, 하고.

 

모리 / 아줌마들이 여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꾀꼬리 / 그렇진 않았다. 그냥 목욕 잘 하고 갔어.

 

산지기 /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내 눈엔 그런 게 안 보였다.

 

꾀꼬리 / 나는 너희 아버지랑은 다르게 객관적으로 인간을 보려고 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너가 그렇다고 했을 때도 자식이어서 받아들이는 게 내가 모자랐고 힘들었던 것이지,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잖아. 사람들 중엔 탐욕스러운 사람도 있고 신경질적인 사람도 있고 인간 같지 않은 사람도 있고, 아 저 사람은 조폭이구나, 아 저런 사람 곁에는 되도록 같이 가면 안 되겠구나, 하면서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간다든지.

 

산지기 / 우리 가족 안에 다 있네

 

꾀꼬리 / (웃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모리 / 산지기님은 학교 다니실 때 여자 같은 애들을 많이 괴롭히신 걸로 아는데.

 

산지기 / 아냐 그런 건 없었어. 우리 때는 예를 들어 남자 반에서 되게 기집애 같은 애들이 있는데 그걸 뭐라고 했냐면 ‘가시나 반종(半種)’이라고 했어. 어떻게 보면 그게 게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가시나 반종이라고 그러면서 가시나 반종은 인간 취급도 안하고. 예를 들어 문제가 생기면 줘 패고 그랬지.

 

모리 / 어떤 문제요?

 

산지기 / 갈등이 생기거나 그러면 가시나 반종이라는 아이들은 전투력이 없거든. 여성스럽기 때문에.

 

꾀꼬리 / 전형적으로 너희 아버지는 아주 폭력적인 남자였네.

 

산지기 / 나는 그런 애들 안 팼다.

 

모리 / 여자 같은 애들 산에 데려가서 바지 벗겨서 고추 있는지 확인하고 울리고 그랬다면서요.

 

꾀꼬리 / 진짜 그랬어?

 

모리 / 전에 본인 입으로 자랑스러운 경험인 것처럼 이야기 하셨는데.

 

산지기 / 그게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지. 산에 데려간 게 아니라 학교 가는 길이 산길이었지.

 

모리 / 그럼 그렇게 놀면 기분이 뿌듯했어요?

 

산지기 / 뭘 뿌듯해. 머시마 새끼가 부랄 차고 뭐하는 짓이냐고 그런 거지.

 

모리 / 걔는 울고 그랬어요?

 

산지기 / 울었지. 미안했지.

 

모리 / 미안하긴 했어요? 언제? 십 년 뒤에?

 

산지기 / 아니, 내가 반장이어서 걔를 보호해주려고 한 거야.

 

모리 / 거짓말 하지마요..

 

산지기 / 진짜야. 나는 애들 이유 없이 때리고 그런 애들 내가 나서서 다 조지고 그랬어. 내가 키가 컸잖아.

 

산지기 / 우선은 아버지가 바쁘기도 했지만 모리에게 분명히 여성스러운 면이 항상 있었고, 누나들과 어울려서 소꿉놀이도 하고 잘 놀았고. 그리고 늘 머시마 다운 정복욕, 성취욕 이런 게 내가 생각하는 남자와는 좀 다르더라고. 근데 그건 개인의 특성이려니 싶어서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지. 그리고 요리에 관심을 갖거나. 그래서 “그러다 부랄 떨어진다.”는 말을 많이 했었고. 태권도 학원에서 토요일마다 산에 가는데 너는 항상 내려올 거 뭐 하러 올라 가냐고 했었지. 나 같았으면 내가 체력이 딸려도 남한테 지기 싫어서 가다가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일단은 가거든. 근데 너는 아예 단호하게 잘라버리고 그러더라.

 

꾀꼬리 / 주말에 산에 데려가면 신경질 내고.

 

산지기 / 근데 그 와중에도 야구 글러브 사 달라 배트 사 달라, 농구공 사 달라 할 때는 되게 좋아했지. 그리고 나는 내 아들이니까 어리석게도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RC 비행기 날리고 그런 거 좋아할 줄 알았는데 우리 아들은 딸들보다 더 관심 없더라고. 근데 이런 건 다 나중에 네 정체성을 알고 나서 그런 것 같다는 거지, 그게 뭐 확실한 증거는 아니고 너가 이성애자여도 개인의 특성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니까.

 

꾀꼬리 / 지나고 나서 내가 그 말을 왜 놓쳤을까 반성했던 게, 그랬으면 빨리 알았을까? 싶었던 게 중학교 때 안경 부수고 왔을 때, 그 여자애가 네가 좋다고 추근덕 댄 것 같았는데, 너가 마지막에 그 여자애에 대해서 뭐라고 했냐면 더럽다고 했어. 얘가 왜 더럽다고 하지? 아니 여자애가 좀 좋아할 수도 있는 건데 왜 더럽다고 표현하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너가 게이인 걸 알게 된 이후에 그걸 내가 놓쳤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

 

모리 / 내가 더럽다고 했었나?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 야구 글러브나 농구공 이런 건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사달라고 한 건.. 너무 어릴 때부터 여자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걸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나도 한 거죠. 항상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쟤는 왜 저렇게 여자 같아?” 이런 말을 들으니까.

 

꾀꼬리 / 누가 그런 소리를 했어?

 

모리 / 모두가 그런 말을 하죠. 엄마 아빠야 그런 말은 안 했지만 사촌이나 이모들이나 학교에서도 그렇고. 엄마 아빠야 “누나가 많아서 그렇겠지”,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지”라고 이야기 했지만. 나도 그게 스트레스였던 거예요. 그래서 소위 남자애들이 한다는 농구 같은 걸 하려고 한 거죠. 그래서 사 달라고 한 거지 좋아서 사 달라고 한 건 아니었던 거예요.

 

산지기 / 중학교 때 즈음에 내가 “어른들의 생각과 내 자신의 생각이 다르면 그걸 얼마든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의만 차린다면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너가 그 이야기에 굉장히 확 꽂혔는지 몇 번을 묻더라고. 정말 하고 싶은 말해도 돼요? 해도 돼요? 해도 돼요? 그랬지. 그러다가 중3 때인지 고1 때인지 “아버지는 아버지가 다 옳다고 생각하세요? 아버지가 아는 세상, 아버지가 아는 게 다가 아니에요”라고 했는데 그 말은 뭐 평생, 다음 세상에 살아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때 그게 너가 성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면서 아버지에게 알려주는 말이었는데. 전혀 눈치도 못 채고. 그때 그 말을 들었더라면 어땠을지. 내가 철이 없었지.

 

모리 / 최근에 손자가 생기셨는데, 손자가 노는 걸 보면서 제 어린 시절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게 다르던가요?

 

산지기 / 일단은 성취욕이 엄청나다. 투쟁이라는 수단을 항상 동반하고, 부모든 누나든 상관없이 가지려는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성도 나오면서 수컷의 본능이 나오고. 너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엄마도 손자 보면서 하는 짓 보고 깜짝깜짝 놀라는데, 엄마도 그런 감각이 별로 없는 게 남자 형제 없이 자랐고, 아들도 순했고. 그래서 손자를 보면서 놀라는데 그래서 내가 “저게 진짜다", 뭐 진짜 가짜를 나눌 건 아니지만 저게 남자애들의 본래 모습이고 우리 아들이 특별했던 거라고 말하지. 그리고 손자는 유치원에서 이미 연애 박사다. 여자애들 졸졸 따라다니고. 그런 거 보면서 나는 ‘다행이다~ 적어도 저 놈은 마음 고생은 안 하겠구나’ 생각하고.

 

모리 / 아웃팅 전까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꾀꼬리 / 안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완벽한 형태의 가족을 원했으니까. 아버지가 완고했으니까 말하기 힘들었겠지.

 

산지기 /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반 정도는 자기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모모임에서 이야기하면 ‘부모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걸 깨닫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니. 너는 생각이 단편적이지 않고 전체를 보는 눈이 있어서 충동적으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애도 아니었고, 또 나를 닮아서 DNA 속에 완벽주의가 분명히 있어. 그래서 너는 완전한 커밍아웃을 바랐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요즘엔 많이 했어. 너는 충동적이지 않거든.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시뮬레이션하고 머릿속에서 개선하고 그걸 머릿속에서 그리는 녀석이니까. 근데 세상에 완벽한 커밍아웃이 있을까? 나는 사실 부모가 쿨하고 쉽게 받아 들여 주는 경우가 오히려 더 불완전한 커밍아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랑 싸우면서 전투력을 갖고 이 도둑놈 같은 세상에 나와야 다치지 않을 텐데. 그래서 부모모임에서 만나는 성소수자 당사자들 중에도 부모님이 쉽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더 걱정이지.

 

 

 

2. 커밍아웃 /아웃팅

 

모리 / 자녀가 성소수자인걸 알았을 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꾀꼬리 / 나는 자기 의지로 선택이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서 “너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있냐.”고 했지.

 

모리 / 그때 “너가 우리를 속였다”, “기만했다” 이런 말들도 했는데.

 

꾀꼬리 / 기만했다는 말은 안 했어.

 

산지기 / 했어. 해서 아들한테 상처를 많이 줬지.

 

모리 / 잘잘못을 따지자는 건 아니고요, 인터뷰니까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는 게 좋아서요.

 

산지기 / 첫 번째 느낌은 ‘믿을 수 없다’였고,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떤 감정의 표현도 없었던 거지. 괘씸하다든지, 원망한다든지, 내 새끼가 불쌍하다든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고

 

꾀꼬리 / 그런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솔직히.

 

산지기 / 그냥 멍 때리고 있다가 그 다음날부터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너에 대해 알게 된 후로 한 번도 어떤 판단을 내린 적은 없었고, 계속 공부만 하고 있었던 거지. 논문을 찾다 보면 제일 먼저 검색되어서 나오는 게 전환 치료에 대한 이야기다. 외국 자료를 보면 전환치료에 대한 게 대부분이고. 한 달쯤 찾다 보니까 그 다음부터는 이게 선택이 아니라 타고나는 거고, 뇌 구조의 차이라던가 제대로 학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들이 있는데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 그게 아마 우리보다 학문적으로 앞서있는 서구권이 기독교의 영향력이 더 세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긴 한데. 너가 여기 처음 불려 내려왔을 때, 그때도 나는 전혀 결론 내린 게 없던 상태였다. 대신 그때 즈음은 너가 너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

 

모리 / 근데 저는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성소수자에 대한 논란이 너무 심하니까 미국정신의학회, 미국심리학회 이런 홈페이지에 가면 아예 학회 차원의 입장이 정리가 되어 있어요. 그걸 처음 봤으면 전환치료에 관련된 자료들은 볼 필요가 없었을 것 같은데. 한 달이나 걸렸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그 학회를 믿지 못한 거예요?

 

산지기 / 아니. 나는 내 손으로, 그 사람들은 자기 아들이 게이가 아니기 때문에...

 

모리 / 그러니까 자기 자식이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산지기 / 그게 부모 마음과는 다르다니까. 나도 그거 다 봤는데 나는 그거보다 더 자세한 것들을 보고 싶었던 거지. 학자로서의 자존심도 있고. 그래서 내가 볼 수 있는 건 다 보려고 내 딴에는 지랄을 한 거지.

 

모리 / 그럼 ‘타고난 것이다'는 결론을 내리고 난 후의 심정은 어땠었어요?

 

산지기 / 그때부터는 무한 깊이의 죄책감. 내 자식을 이런 힘든 인생을 살도록 내가 낳았구나, 그 말도 못하는 죄책감.

 

꾀꼬리 / 내가 너 가졌을 때 시어머니하고 살면서 너무 힘들어서 술을 한번 먹은 적이 있는데 그거 때문에 혹시 문제가 생겼나, 그런 생각도 했지.

 

산지기 / 자책이라는 놈은 얼굴이 천 개도 더 된다. 어렸을 때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진 거부터 시작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것들인데, 오만게 다 떠오르지.

 

꾀꼬리 / 너 가졌을 때 내가 치아치료를 했는데 치아 치료에 쓰이는 게 테트라사이클린이라는 건데 작은 누나 낳고 바로 너 가지니까 지금 결국은 임플란트 하고 있잖아. 이가 완전히 썩었는데 치아치료가 안 좋다고 해서 안 하려고 했는데 이가 너무 퉁퉁 부어서 어쩔 수 없이 치료를 했는데 거기에 쓰이는 테트라사이클린이라는 약품인데, 너 놓고 나서도 뉴스라든지 이런 데서 테트라사이클린 때문에 백혈병이 온 거라든지, 그런 기사들이 떴는데, 그걸 보면서 나도 저걸로 치료했는데 우리 아들이 괜찮겠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 근데 너가 태어났을 때 어땠냐면 앞니가 새카맸어. 그 앞니를 보면서 그때 치료 때문이구나 미안하고, 그래도 젖니니까 새 이가 나면 깨끗하게 되지 않겠나 하면서 크게 걱정은 안 했는데 너가 성소수자인 걸 알게 되고 나서 그게 다시 생각난 거지. 백혈병의 원인이었다는 기사들이 생각나면서. 치과의사들은 약품에 대해 잘 모르니까 괜찮냐고 물었을 때 약을 조금밖에 안 쓴다고 했는데 조금 쓴다는 건 유해하다는 뜻이니까. 나는 아기 가졌을 때 감기약도 안 먹었는데. 너희 아버지 허리 아프면서 양의학에 대한 100프로 신뢰를 잃어서.

 

산지기 / 네 작은 누나는 어릴 때 너랑 같이 인형놀이하고 놀아서 그렇게 된 줄 알고 한 달을 울고 다녔다.

 

모리 / 처음 자녀가 성소수자인걸 알았을 때 여러 가지 정보들을 찾아보셨다고 했는데요.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연락할 생각은 없으셨나요? 없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보들을 찾아 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산지기 / 처음에야 인터넷으로 찾지만 후에는 도서관이나 논문 자료를 찾았는데 처음부터 인권단체에서 접촉할 생각을 전혀 안 했던 게, 사람마다 다를 텐데, 나는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평생 살아오면서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건 내 특성이야. 한참 많이 알고 난 다음에야. 사실 자료를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단체들도 드러나게 되어있거든.

 

모리 / 어떻게 커밍아웃 하는 게 좋은 방법 인 것 같으세요?

 

꾀꼬리 / 그것 때문에 방황을 해서.. 미리 좀 먼저 알았더라면 대학 가거나 할 때 더 도움이 되는 학과를 선택한다던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산지기 / 근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우리는 지금 어쨌든 알고 나서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근데 알기 전에 우리가 어떤 상태였는지 생각해봐. 난 커밍아웃의 완벽한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상황이 가족마다 다르고 가치관이 다 다르고 유교적, 종교적으로 다 다른데 그걸 한 번에 다 이야기할 수가 없거든. 양쪽이 다 준비가 되어야겠지만 성소수자 본인 마음가짐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상한 소리를 들어도 상처를 받지 않을 정도로 자가 단련이 되어 있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로는 가족들도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 지식을 어느 정도 쌓아야겠지.

 

모리 / 가족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을 사전에 쌓는 게 어려운 것이, 애초에 가족 안에서 동성애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정말 없는데, 갑자기 제가 엄마 아빠한테 “성소수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당연히 엄마 아빠가 이상하게 생각할 거란 말이죠. ‘얘가 혹시?’ 그게 이미 커밍아웃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산지기 / 맞아. 그러다 커밍아웃을 해버리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니까 상처도 더 받게 되고.

 

꾀꼬리 / 사실 우리 집에서 성소수자에 대해서 제일 많이 이야기한 사람은 너희 아버지였지. 싫다고. “채널 돌려!”

 

산지기 / 나 그땐 참 못된 사람이었네. 미안하다. 엄청 건방졌었다.

 

꾀꼬리 / 맞다.

 

모리 / 근데 요새는 또 다른 것 같아요. 티비에 워낙 성소수자에 대해 많이 나오니까 티비 보다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는 것 같다. 근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산지기 / 맞아. 요즘은 사회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 우리 성장기엔 아예 이런 세상은 있는 줄도 모르고 컸으니까.

 

꾀꼬리 / 선택사항이라고만 생각했지.

 

산지기 / 가시나 반종은 한번씩 줘 패고 강하게 키우면 씩씩한 상남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가시나 반종이 영원한 가시나 반종이 될 거라곤 생각도 안 했지.

 

모리 /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커밍아웃에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야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꾀꼬리 / 알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만났으면 어머니로서 반성할 건 반성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내가 못해줬던 것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냥 잘 안아줬을 거야. 얼마나 말 못하고 힘들었을지 생각하면서 안아줬을 거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때는 내 성질대로 그냥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내 입장, 내가 너무 힘든 거 그거 때문에... 그 충격 때문에 너한테 상처 준 것 때문에 지나고 나서 나도 힘들었다. 아이고 또 울면 안 되는데.

 

산지기 / 성소수자들이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는 게 직장이나 사회에서 커밍아웃하는 것 보다 첫 번째이자 최종 관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이해가 돼. 우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니까. 근데 그때 알게 되고 나서 처음 여기에 내려오라고 불렀을 때, 내가 후회되는 건 너희 누나나 엄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내가 말을 통제를 전혀 안 했어. 나는 말 한마디 할 기회도 없이 너희 엄마랑 누나가 말을 막 해서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지. 지금 생각해보면 너희 누나도 단계가 있는데 전환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단계에 있었고 엄마도 그 상태에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대화가 안 된 거지. 세상에 결혼 두 번 하면 두 번째는 잘 한다는데 내 아들이 커밍아웃 두 번 하면 더 잘하지 않을까.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네. 통제를 잘 했더라면. 미리 누나랑 엄마한테 사전 교육을 시키고 교감을 충분히 한 다음에 너와 만났더라면 그렇게 오해하고 어려운 시간을 오랫동안 안 보내도 되지 않았겠나 싶은데, 인생이 늘 그렇지 뭐.

 


 

3. 갈등 /고민

 

모리 /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로 상담을 받아 본 경험 혹은 시도가 있으셨나요?

 

꾀꼬리 / 상담 같은 건 안 받았다.

 

모리 / 그럼 누군가에게 고민을 이야기할 곳은 있었는지?

 

꾀꼬리 / 혼자 힘들어했다.

 

산지기 / 너희 엄마는 그런 거 이야기 안 하는 사람이다. 철저히 숨기는 사람.

 

꾀꼬리 / 철저히 숨기는 게 아니라, 아들이 밝히지 말라고 했잖아.

 

산지기 / 아니, 밝혀도 되는 사람한테는 밝혀도 되는데.

 

꾀꼬리 / 밝힐 사람이 없었다. 그만한 인간이 없다 주변에.

 

산지기 / 뭐 내가 두 군데 밝혔는데 당신이 밝힌다고 줘 팼잖아.

 

꾀꼬리 / 뭐 하러 밝히나. 그 사람들은 흥미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산지기 / 아니지. 밝혀야 세상이 바뀌지. 그렇게 생각하면 얘들은 영원히 소수자로 살아야 해.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모리 / 그건 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같고요, 엄마는 성당에서 기도하면서는 위안이 안 됐어요?

 

꾀꼬리 / 성당은 위안이 별로...

 

모리 / 성당은 잘 다녔어요?

 

꾀꼬리 / 잘 못 다녔는데 이것 때문에 못 가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사실 교리라는 건 인간이 만든 거거든. 하나님의 소리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주의 일부분일 뿐이고.

 

산지기 / 너희 엄마가 얼마나 강한데. 너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 나서도 엄마 삶에 별 변화가 없었다.

 

모리 / 그래도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꾀꼬리 / 아버지랑 이야기했지 뭐. 가족이 있는데 뭐. 나는 자식이 있었잖아. 누나들이랑도 이야기했고. 네가 힘들었지.

 

모리 / 산지기님은 정기 모임 중에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고 많이 말씀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산지기 / 그것도 단계인 것 같은데, 같은 또래의 이성애자들이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사회인으로서 뭔가를 갖추고 성취하려고 하는 그런 것들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소수자 젊은 친구들은 보면 그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물론 편견이 존재하는 현실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그게 좀 마음이 아파.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생기는 가치관이나 사회성, 노인이 되어서 은퇴를 준비하면서 사회에 남기고 싶은 거라던가, 그런 부분이 올곧이 쏙 빠져버린 것 같아.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그런 게 마음이 많이 아파. 그래서 소수자들의 편견이 덜한 외국 사례를 보면, 특히 미국 같은 경우에는 이성애자든 성소수자든 그런 가치관은 별 차이 없이 공유하면서 사회적 성장을 하더라고. 근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점에서는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아서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파. 궁극적으로 차별이 없어진 세상에서 성소수자가 사회 일원으로 살아간다면 그런 차이가 없을 테니까.

 

모리 / 근데 저는 그게 꼭 성소수자여서 그렇다기 보다는 계급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돈 잘 벌면서 인생계획 잘 준비하며 살아가는 게이들도 많거든요. 아빠가 부모모임에 와서 성소수자들을 처음 만나기도 했지만 사회 운동도 처음 만난 거잖아요? 저도 인권단체에 처음 들어와서 사람들 만나면서 그런 고민 많이 했거든요. 여전히 하는 고민이기도 하고.

 

산지기 / 나는 요즘 와서는 2, 3년 전부터 생각이 좀 변하는데, (요샌 내 생각에 자신을 못하겠어. 늘 변해.) 예전에는 내 아들은 똑똑하고 좋은 대학도 나왔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상류 계급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녀석인데, 이 녀석이 요즘 하는 걸 보면 보람되긴 하지만 굉장히 사실은 재능 기부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어서 걱정이 많았거든. 근데 요즘은 내가 어떤 생각이 드냐면, 이 아이가 만약 이 일을 계속 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 내가 전부터 부모모임이 너 없이도 잘 돌아가도록 시스템화 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잖아? 그러려면 경제적인 것부터 모든 네트워크가 완전히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을 했었는데, 만약 내 아들이 그러지 않고 이 일을 한동안 계속 하겠다, 그럼 지금처럼 원룸에서 겨우 살아가는 정도 밖에 안 되겠지만, 그것도 나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 행복이라는 것이 남들이 평가하는 가치, 아버지도 남들이 평가하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진짜로 한 달에 한 200만원 정도 겨우 버는 삶을 살면서 정신적으로 가치로움을 양식 삼아서 먹고 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꼭 내 아들이 좋은 차 좋은 집이 필요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꾀꼬리 / 당신이 좋은 집 좋은 차 다 가져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산지기 / 아니, 내 말은 내 자식이 그렇게 살더라도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겠다는 말이야.

 

꾀꼬리 / 그건 당신이 가져서 그런 소릴 하는 거다.

 

산지기 / 내가 저런 사람이랑 삼십 년을 같이 살았다. 앞으로도 계속 살 거다. (웃음)

 

모리 / 엄마 귀엽잖아요.

 

 

 

4. 화해 /해소

 

모리 / 자녀의 커밍아웃 이후 인간관계나 세상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산지기 / 나는 성격이 확 바뀌었다.

 

꾀꼬리 / 성격이 바뀌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산지기 / 아니, 예전에는..

 

꾀꼬리 / 잘난 척 억수로 했는데 그건 좀 나아졌지.

 

산지기 / 예전에는 내 개똥 철학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데 남의 말이 제대로 들리기 시작하더라고. 그 다음부터 사회생활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 자기 에고(ego)에 빠진 사람은 자기 이야기만 하거든.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되고. 그 전까지 나는 그렇게 안 살았거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아.

 

꾀꼬리 /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초연해졌다는 말을 듣는다. 지난번에 아프고 나서 항상 건강하게 사는 게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운명은 내가 개척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산지기 / 그리고 너희도 다 느꼈겠지만 아버지가 어떤 절대선, 절대적인 가치 이런 걸로 딱 잘라서 이야기하고 너희를 그렇게 키웠잖아? 그런 거 다 없어졌다. 아버진 요샌 하여가다.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별 또라이 새끼가 지나가도 ‘쟤도 다 사연이 있겠지~’ 옛날엔 아빠가 운전하면서 욕을 그렇게 많이 했잖아. 요샌 운전하면서 욕도 안 한다. 이제 내가 원인이 돼서 싸우는 일은 없어진 것 같다.

 

꾀꼬리 / 근데 너희 아버지는 가면 갈수록 할머니랑 똑같아진다. 자기는 나보고 너희 엄마 DNA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모리 /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를 추천하셨는데요. 어떤 점에서 추천 하시나요?

 

산지기 / 그 영화는 처음 알았을 때 봐서 좋았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줬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까.

 

모리 / 혼자라고 느끼셨나요?

 

산지기 / 다 그렇지 않을까? 그 영화가 진실함을 전해주잖아? 그 영화의 베이스가 기독교가 아니라 불교였으면 진짜 재미없는 영화였을 거다.

 

 

 

5. 부모모임

 

모리 / 부모모임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산지기 / 외국, 특히 미국의 사례를 봐도 각 주마다 편견 방지법 이런 게 통과되는 데 가장 언론에 많은 감동을 많이 준 게 부모들이더라고. 그래서 부모들이 나서야겠구나. 기독교의 포비아 새끼들이 지랄을 해도 부모들이 나서서 나도 내 아이가 소수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 그렇다면 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되묻고 싶더라고.

 

모리 / 부모모임에 나와 보시니 어떠신지

 

산지기 / 우리는 치유의 단계는 지난 것 같다. 나는 혼자 다 해결하고 치유가 다 된 상태에서 나갔기 때문에. 그런데 나 같은 경우가 아니고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부모모임에 와서 우리랑 같이 이야기하면서 치유가 된다면 보람이 있겠지. 다만 좀 익숙해지면서 전투력이 증가하는 것 같다. 세상에 좀 더 당당해지고. 왜냐면 옆에 어깨동무 걸어줄 사람이 많다는 확신이 점점 커지니까. 거기에 비례해서 세상을 향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당당함, 그런 전투력이 커지는 것 같아. 나는 개인적으로 자꾸 모임에 못 가는 사정이 생겨서 짜증나. 농번기라 밭 일이 너무 많아서.

 

 

 

6. 미래

 

모리 / 자녀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내다보고 계시나요? 걱정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산지기 / 우리가 사는 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한 의식이 실제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게 불과 20, 30년 정도 밖에 안 됐다고 생각하거든. 내 성장기엔 아예 그런 세상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5000년 이상 우리 사회에 뿌리가 내린 건데, 개인의 인권이 중요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가 발전된 민주주의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모든 편견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은 욕심이고 틀렸다고 봐. 서서히, 소수자 당사자와 가족들, 지지자들이 사회 모든 각계 각층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혁명이나 혁신이 있다고 보지 않아. 그런 건 쿠데타 밖에 없어. 나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만 옳은 차별금지법이 완성된다고 봐. 그런 존재가 없다면 부실한 법이 만들어질 거거든.

 

모리 / 인터뷰를 끝마치며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산지기 / 아들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모든 면에서. 나는 아들이 자기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완전한 의미에서의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파.

 

모리 / 근데 그건 누구나 다 똑같지 않을까요?

 

꾀꼬리 / 미국처럼 법적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산지기 / 법은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이 우선해야 하는 거지 그냥은 안 만들어지는 거야.

 

모리 / 그럼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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