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정정 요건과 절차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하라" (2021.11.16)

 

나비 (성소수자부모모임 운영위원)

 

트랜스젠더 자식을 둔 부모로서 발언하겠습니다. 저는 나비라고 합니다. 바이젠더 팬로맨틱 에이섹슈얼 FtM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저희 아이는 2018년 10월 법적성별 정정 절차를 밟았고, 한 번의 기각 끝에 2019년 10월 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적인 절차는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남성’으로의 정정을 위해서는 생애 전반을 통틀어 하나하나 세세히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일관되게 ‘남성’에 부합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기각 당시 판사는 진정 사회적으로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남성의 성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고도 그 과정에서 많은 모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남성이었던 그 판사는 자신의 삶의 양식을 구성하고 사회에서 상호관계를 맺는 데 있어 자신의 성기를 중심으로 했나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판사의 가치관은 그저 납작하고 편협한 것이겠지요. 수술 전에도 저희 아이는 이미 스스로 남성으로서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법적 성별 정정을 통해 더 이상 삶을 위협당하지 않고 자신으로서 오롯이 살고자 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이 한국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저희가 이런 일을 겪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무지로부터 비롯한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차별과 혐오가 반영되어 있는 이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오롯한 삶을 살아내는 데 매순간마다 방해받고 있습니다. 아니 방해가 아니라 권리가 침해당하고 존엄이 훼손당하는 것이지요. 주민등록상 성별을 1 또는 2, 3 또는 4로 엄격히 구분하는 탓에, 법적 성별과 달리 여겨지는 외모나 표현 등을 하는 트랜스젠더는 공공서비스, 교육, 고용 등 여러 영역에서 불편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바꾸고자 법원에 성별정정 허가신청을 내어도 법원에서 과도하게 수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수술할 의사가 없거나 당장 수술을 할 수 없는 당사자들은 법적 성별이 바뀌지 않은 채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생식능력 제거 수술, 외부성기 재건 수술을 그렇게 엄격하게 요구하면서도 한국에는 트랜스젠더 의료에 관한 공적 정보나 시스템이 전무합니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비급여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즉 성확정 수술을 여전히 기호에 따른 선택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수술에는 큰 위험과 비용 그리고 시간이 뒤따르는 데도 국가와 의료기관으로부터 그 어떠한 안내와 조치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법원에서는 성별 정정을 위해서는 수술을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한국에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은데 왜 다짜고짜 수술을 해라마라 합니까?

 

물론 트랜스젠더가 신체에 겪는 위화감 때문에 이로 인한 고통이 큰 경우, 수술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트랜스젠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개개인에 따라 겪는 위화감과 필요성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의료적 조치에 있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사입니다. 본인의 몸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식능력 제거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트랜스젠더라 하더라도 아이가 갖고 싶다면 충분히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에게 성확정 수술을 비롯한 의료적 조치란 무조건 본인의 성별위화감에 따라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거기에 법이 개입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법은 트랜스젠더가 온전한 삶을 살고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들어 외부성기 재건 수술과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요구하지 않고 법적 성별정정이 승인된 사례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매우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여전히 법적 성별정정 절차는 불친절하게 안내되고 있어 결국 커뮤니티 등을 통해 직접 찾아나서야 합니다. 또한 법률적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며 판사의 재량권에 기대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 재판을 이어나가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은 아직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정정을 기각당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도 한 차례의 기각 끝에 겨우 1년 만에 정정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사회의 트랜스젠더들이 언제까지 성별정정을 위해 소위 ‘선량한 판사’를 운 좋게 만나기를 기대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판사로부터 심리와 심문 중에 인권 침해적이고 모욕적인 질문과 지나친 요구, 부당한 훈계를 들어야 합니까?

 

사법부의 판단은 무엇보다 개인의 가치관이 아니라 헌법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헌법상으로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사법부로부터 침해받아야 했습니다.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사법부는 그 책임을 다 하여야 합니다. 당장 성별정정 요건을 완화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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